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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갓 커뮤니티의 후기
‘나’는 존재하는가?
‘진실’은 무엇인가?
고작 작년에 학교 철학 수업에서 같은 주제들을 논했었어요. 약간 비껴가는 요소들일수도 있겠으나... 에머슨의 자기신뢰론, 플라톤의 인식론 (대표적으로는 동굴의 우화가 떠올랐네요) 등등 여러가지 철학적 생각들을 불러일으키는 스토리였습니다. 총괄님은 엔딩 후 스토리가 교훈 및 가르침을 주려고 적힌 것이 아닌 영감을 주기 위해서였다고 말씀하셨었는데, 분명한 의도 전달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엔딩이 해피엔딩이었다면 이것은 하나의 인간찬가 비슷하게 흘러가게 되어 교훈을 억지하게 되었을텐데, 이토록 마음 아픈 새드엔딩을 ‘진엔딩’이라 부름으로서 우리가 절감하도록 만들어요. 변화가 없더라도 캐릭터들이 했던, 그리고 우리가 지속하는 이러한 고찰들이 얼마나 의미있는 행위인지. 엔딩나고도 몇번을 인용한 데카르트의 구절이지만… 우리는 생각하기에 존재하니까요 (눈물)
동시에 sf적 요소를 이야기해보자면 매트릭스 못지 않은 이야기였다 애프터 탐라에 여러번 언급 되었죠. 매트릭스의 내용은 인식되는 실제와 실재하는 실제 사이의 괴리감, 우리가 인지하는 모든 것이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참신한 질문을 영화라는 매체로 부여함으로서 1999년도 sf계를 뒤집어놓았죠. 그 이전 1980년대에는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장르를 거의 구축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닌 돈 드릴로의 <화이트 노이즈>가 있었습니다. 소설이었죠. (재미있어요. 버그가 다루는 태라와 사회적 문제들의 이야기를 즐기셨다면 좋아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2020년대가 되어… … 이게 커뮤로 등판했네요.
아니 물론 sf계 커뮤는 많고 많지만… 버그가 정말로놀랍게 (하… 알아요 자캐커뮤니티라는 서브컬쳐를가지고 이렇게 장황한 해석과 감탄을 늘어놓는다면 우습게보일수도 있겠으나 저는 커뮤란 심히 오타쿠적인 양상을 가질 뿐 엄연한 창작의 수단으로 생각한단 말입니다)(라고 해명해봅니다) 느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커뮤라는 배경에서 사용될 수 있는 갖은 장치들의 굉장히 대담한 사용들이었던 것 같아요.
총괄계와 스토리 진행계가 가지는 의미 (개미 1호야… 나는 아직도 네 존재를 완전히 정의하지 못하겠다) (그리고 관리자모드라는 시스템적 교류의 허용), 캐릭터의 계정들이 가지는 의미 (예로 반메타성 시선으로 인해 계폭이라는 캐릭터 소멸이 불러오는 이중적 충격), ‘오너’ 개념들의 직접적인 커뮤니티 개입 (정말 대담했다고 생각합니다), 탐라와 디엠간의 잦은 잔인한. 분리 혹은 캐릭터들의 정보/상태 불균형에서 기인하는 괴리감 등등… 트위터 커뮤니티를 뛰면서 볼 수 있는 기믹이란 기믹은 전부 본 것 같아 정말 러닝 내내 한시도 스토리가 지루했던 적이 없었네요. 휴몰라요… 이런류의 커뮤가 또 있나요? 존재하나요? 내게는 너무나 새로웠어
메타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부분적 반막화 (이건 매우 좋은 흐름이었다 봅니다… 시리어스 분위기와 막장 분위기가 이렇게 조화롭게 이루어지는 커뮤는 처음 봤어요. 이는 러너들의 조화또한 감사할 부분이죠. 분명히 호불호가 강히 갈릴 요소이나 모두가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기에 끝까지 탄탄한 스토리의 이어짐이 가능했던 것 같아요.) 로 인한 메타적 즐거움이 존재하는 반면 공포 요소 또한 한시도 아쉽지 않았습니다… 총괄님께서 무섭지 않은건 아닐까 많이 고뇌를 하셨다고 말씀하신걸 봤는데, 저는 제 입장에서의, 그리고 캐릭터의 입장에서의 공포를 정말 만연하게 느꼈고… 버그의 상황적 공포, 연출적 공포가 둘다 그저 개쩔었다는 저렴한 감탄사를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엔딩이 나자마자 총괄님들에게 팬심을 고백했습니다. 사실 엔딩이 나기 전에도 러닝계에 지속적으로 고백했어요. 당신의 창작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것의 파편이 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초반에 이해하지 못한 많은 요소들이 수미상관처럼 이어지며 수많은 떡밥들이 회수되었으나… 그럼에도 아직 진상이 완전히 공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는 여전히 계속해서 여러가지 가설을 세우고 이해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거늘이가 제 뇌에 침투했나봅니다. 러닝 내내 총괄진의 터치가 조금도! 없었다고 봐도 좋을 정도의 자율성을 가졌던 캐들의 추리 추론이 즐거웠던 만큼 지금도 너무나 즐겁습니다. 아마 진상과 백스토리가 완전히 공개되고 나면 (절대재촉아닙니다 총괄님 현생 화이팅해주세요 plz) 저는 또한번 입벌리고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겠죠…
그리고 버그의 이야기는 이어질 것입니다.
그래도 45번 테스터가 깨어났으니 뭔가 변화가…
있으려나요… … … 쩜쩜쩜
또한 여담이나, 이건 바깥 요청으로 첨언해보는데… 제가 이 커뮤니티에 시선이 갔던 1차적인 이유는 홍보지의 #LGBTQ 표기 덕분이었답니다. 이게 저 뿐은 아니었는지 다음은 이 사실에 대한 외부인 지인분 몇 분들의 전언들 중 하나입니다: 총괄님 사랑합니다. (진짜 전언임) (생강님 이 문서는 총괄님께 직멘으로 전달될 예정이며 어쩌구) 제가 바로 전커에도 퀴어캐를 굴렸었기 때문에… 이 커뮤니티의 전면적인 다양성이 매우 달갑고 편안했어요.
길어지는 말은 이쯤에서 맺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하고싶은 말들 주절주절 적자면 논문도 적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왜이렇게 과몰입하냐구요? 그럴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갓커 갓총괄진 갓캐들 그리고 갓서사였으니까요… 물론 러닝 내내 삼만오천번 현타가 왔습니다. 러닝계에서 자주 한탄했었어요. 아주 매우 극심한 현타와 과몰입을 함께 불러일으키는 이 커뮤는 그냥 하나의 장대한 블랙코미디라고… (탈커합시다.) (물론 저는 탈커에 실패할 듯 합니다. 벌써 또 하나를 잡아버렸네요)
총괄진님들과 갓러너분들 그리고 태라 QA팀에게 다시한번 새삼스러운 사랑을 고백합니다.
앞으로도 애프터 즐겁게 해보자구요
그럼 20000.
2021.8.10
강거늘 오너